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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요 선생님

cqjvq 2024. 1. 22. 23:41


저번 주말에 아이들과 도서관에 갔다가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의 학년 권장도서 다섯 권을 대출해 왔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책이었으면 함께 읽었을텐데, 첫째는 이제 혼자 알아서 읽기 때문에 예전처럼 함께 읽을 기회는 없어졌습니다. 그래도 아빠 마음에 아무리 바빠도 아이와 한 권이라도 함께 읽고 싶어서 다섯 권의 책 중 동시를 가을도 한창이고 다른 책에 비해 금방 읽을 수 있어서 함께 읽어보았습니다.동시의 제목은 <놀아요 선생님>으로 경남 산청에 있는 간디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남호섭 선생님의 동시로, 저자는 1992년 <담배 심부름> 등 동시로 제1회 황금도깨비상을 받았고 그동안 어린이뿐 아니라 청소년의 생활 세계를 담은 시를 써 왔는데 이 동시에도 아이들의 생활 세계가 그대로 드러나 있습니다.만우절<오늘은 쉽니다>교무실 문에 이렇게 써 붙여 놓고선생님들 다 도망갔다.남의 교실에 들어가 시치미 떼기,선생님 앞에서 싸우다가의자 집어 던지고 나가기,우리가 음모 꾸미는 사이에한발 앞서선생님들 다 도망갔다.(p.14)지금 생각하면 웃기고 부끄러운 일인데학창시절 만우절이 오면 어느 반 상관없이 아침 등교길부터 만우절 준비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반 통채 바꾸기, 선생님 들어오시는 정문 위에 분필을 엄청 묻힌 분필 지우개 올려놓기, 반 학생 전부 뒤로 앉기 등...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선생님들께서 알면서도 만우절에는 우리들이 하는 행동을 이해하고 화를 내시지도 않으셨고, 더군다나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에 당하기도 하셨습니다. 지금도 만우절에 제 학창시절처럼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만우절 행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같은 낭만은 없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시골 버스 바쁠 게 없다우리 동네 버스 기사 아저씨는혼자 노래하다가 신나면우리한테도 시킨다.날마다 같은 동네를 다녀서시집간 누나 이야기도 묻고바쁘게 뛰어오지 말고일찌감치 나오라고 야단도 친다.한 시간에 한 대아니면 두 시간에 한 대,할머니들은 삼십 분을 기다려서십 분을 타고 간다.하루는 몰던 차 세워 두고동네에서 물 좋기로 이름난명훈이네 물 받으러 간 기사 아저씨 들으라고차에 타고 있던 할머니들"차비 깍아야 한다!" 소리치셨다.(p.62 ~ 63)제가 살던 곳은 도시라 시골 버스에 대한 추억이 별로 없지만 대학 시절 친한 친구들 중 경북 오지 시골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여름방학 때 놀러가 시골 버스의 정겨움을 느껴보곤 했습니다. 시골 버스 운전기사 아저씨는 버스 승객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집 안 부엌 숟가락까지 알 것 같았습니다), 시장에서 장을 본 할머니가 조금 늦게 올 것 같다는 어느 아주머니의 이야기에 도시에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버스 출발 시간보다 대략 10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할머니가 도착하신 후 출발하기도 했습니다. 시골 버스 안은 시장에서 사온 닭 울음소리를 배경으로 할머니, 어머니들의 이야기 꽃이 이곳 저곳에서 피어났습니다(물론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경상도 사나이답게 시끄러운 와중에도 조용하셨구요). 여전히 지금도 정겨운 시골 버스들이 시골 곳곳을 달리고 있겠죠?<놀아요 선생님>은 총 5부로 구성된 동시로 저자가 경남 산청에서 대안학교인 간디학교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기에 학교 생활 및 시골에서 경험하고 느낀 감정들을 토대로 쓰여져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권장도서로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학부모들이나 동시를 통해 대안학교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과 시골 생활의 정겨움 등을느끼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봐도 좋을 동시입니다.
동시집 타임캡슐 속의 필통 한 권을 냈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 시가 여러 편 실리기도 한 남호섭(南浩燮) 시인의 십이 년 만의 작품집이다. 제도권학교 교사 자리를 버리고 경남 산청의 대안학교 간디학교로 간 그는 내가 알고 있던 학교의 틀이 완전히 뒤집히는 경험 속에서 어느새 시를 쓰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의 고백이 동시 와 시 의 경계를 지운 시편에 담겨 가슴 흐뭇한 울림을 남긴다.

머리말|어느새 나는 시를 쓰고 있었다

제1부 간디학교

만우절
스승의 날
시 읽기 삶 읽기
솔직히 말하면
교문 없는 학교
벌주기
정식이
한근이
기숙사
한솥밥 먹기
3월
굼벵이
놀아요
치약 전쟁
우리 교실
시 읽어 줄까
배꽃
내 여자 친구

제2부 봄비 그친 뒤

불 끈다
시 못 쓰는 시인
벌의 몸무게

보랏빛
봄비 그친 뒤
사랑
대추나무
첫 발자국
집 없는 달팽이
선암사

제3부 도둑 할매

시골 버스 바쁠 게 없다
한여름 소나기

꽃 파는 할머니
아스팔트 위의 깡통
산청 장날
도둑 할매
귀신 할매
일터
명우

제4부 잠자리 쉼터

방학 맞은 운동장
흙이 내게
자전거 찾기

이름은 몰라도
잠자리 쉼터
고래의 죽음
투호
눈사람
꼬마잠자리

제5부 네가 부처님이다

지렁이
외할머니
흔들리는 차
두려움
할머니 전화
산수유
다모
가을
네가 부처님이다

환한 봄빛

해설|삶의 아름다움, 시의 아름다움_신경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