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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을 좋아하지 않았던 내가 요즈음은 그 매력에 빠져 있다. 단편은 보다 깊게 진행할 수 있는 이야기를 짧게 끝내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렇게 때문에 더 매력적이다. 이후의 일을 상상할 수 있고, 그 안의 의미를 찾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한국스릴러 단편집이라니.. 우리나라의 스릴러 문학은 다른 나라에 비해 한참 뒤진다고 생각했었지만 요즈음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숨 막히는 반전도 있고, 상상하지 못한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는 소재나 구성도 나름 괜찮다. 이 책은 2008년에 나왔지만 촌스럽지 않고 몽환적이면서 등골이 오싹한 기분을 준다. 모두 8개의 단편으로 이뤄진 각양각색의 이야기들. 그 매력에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가족을 눈앞에서 모두 잃은 남자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을 찾아 심판한다. 평범함을 가장해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들 그리고 그들을 향해 복수를 펼치는 이야기 인간실격, 주인공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독자적인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왼손. 그 왼손의 끔찍한 반란을 그린 인간실격, 잇달아 발생하는 투신자살 사건의 또 다른 진실. 광주학생운동 이후 병들어 버린 영혼을 이야기 한 피해의 방정식, 집으로 귀가하던 중 휘말린 죽음의 게임. 살아남기 위해선 그들을 죽이는 일 뿐, 무사히 도망친다면 받게 되는 거금. 주인공은 과연 이 살인게임에서 살 수 있을까? 살인게임을 이야기 한 질주,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 부부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찾아간 펜션. 하지만 그 펜션은 살인 후 사건을 무마해주는 곳인데... 부부의 관계회복 프로젝트(?) 주말여행, 술이 깬 남자가 정신이 든 곳은 오래된 집. 그곳에서 들려오는 죽음의 소리. 중국에서 전해오는 액귀를 소재로 한 액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남자가 어느 날 한 주택에 초대(?)받는다. 이 남자의 무통증은 신의 선물일까? 아니면 죽음의 선물일까? 죽고 죽이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한 남자 이야기 사냥꾼은 밤에 눈 뜬다, 한 여자를 집요하게 스토킹하는 남자를 잡기 위해 해결사가 나선다. 과연 남자는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 스토커를 잡기 위한 남자의 이야기 세상에 쉬운 돈벌이는 없다 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이 8편의 단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말여행이다. 한때는 그래도 미치도록 사랑했던 부부였을 그들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관계가 뒤틀려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일까? 덤덤하고 차가웠던 남편의 주말여행 제안. 가기 싫었지만 관계 회복을 위해 필요하다는 남편의 말에 무작정 따라 나선 여행은 결국 제대로 뒤통수 맞는 여행이 되었다. 하지만 제대로 뒤통수 맞은 사람이 결국은 남편이 되었다는 것. 이 펜션의 비밀은 예약한 사람이 같이 온 사람을 죽이면 그 뒤처리를 해주는 것. 하지만 예약자는 죽어버리고 아내는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실제 이 세상에 죽음의 뒤처리를 대행해주는 곳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살다보면 누군가를 죽이고 싶게 미울 수 있을까? 어떻게 미워해야 죽이고 싶은 것인지.. 누군가를 죽이고 싶도록 미워해본 적 없는 나는 그래서 죽음 뒤처리 대행이 섬뜩하다. 이 외에도 다양한 단편들은 신선함을 제공한다. 어떤 단편은 장편으로 만들거나 영화로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반전들이 있고, 재미도 있다. 특히나 광주학생 운동 이후 다중인격이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그 사건을 목격한 사람이나, 피해자 그리고 가해자까지 모두 심각한 고통임을 알게 되었다. 우리 역사를 접목한 스릴러. 이것도 좋은 소재란 생각을 해 본다.
한국 스릴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걸작 단편선 〈시작 미러클 시리즈〉의 첫 작품 한국스릴러문학 단편선 . 온 · 오프라인 공간에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국내 장르문학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한국 스릴러 작가 8인의 단편을, 젊은 감각의 대중문화평론가 김봉석이 엮었다.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은 영웅 심리에 불타는 한 남자의 거리낌 없는 활약, 논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존재의 도발, 부부의 마지막 종착지로 군림하는 푸른숲 펜션 등 다양하고 기발한 소재들을 현실적이면서 스릴 넘치는 구성과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최민호의 〈인간실격〉, 강지영의 〈나의 왼손〉, 세현의 〈피해의 방정식〉, 김상환의 〈질주〉, 김미리의 〈주말여행〉, 권정은의 〈액귀〉, 전건우의 〈사냥꾼은 밤에 눈뜬다〉, 이상민의 〈세상에 쉬운 돈벌이가 없다〉 등 8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인간실격_최민호
나의 왼손_강지영
피해의 방정식_세현
질주_김상환
주말여행_김미리
액귀_권정은
사냥꾼은 밤에 눈뜬다_전건우
세상에 쉬운 돈벌이가 없다_이상민

해설_김봉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