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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브카의 문체는 담백하면서 톡톡 튄다. 가령,“그녀의 옥수수수염 빛깔 머리와 약간 어색한 걸음걸이 때문에, 그리고 뭔지 모를 것 때문에 이미 그때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49쪽)라든가 “긴 다리와 약간 안쪽 방향으로 실룩거리는 한쪽 엉덩이. 나는 이런 매력적인 여자를 두고 나갈 수 있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52쪽)라는 레오의 독백은 리브카가 선뵈는 감칠 맛이다.리브카는 소설 속에서 1994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 츠비 갈첸을 되살려내고 있다. 이름도 똑같고 아버지가 생전에 발표했던 논문도 그대로다. “레마는 햄릿, 그 연극은 죽은 아버지들의 큰 영향력에 대한 얘기라고,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고 대꾸했다”(171쪽)는 대목은 아버지에 대한 그녀의 그리움을 짐작케 한다.본문에 보면 리브카의 실제 가족 사진이 두 장 나온다. 하나는 부모와 오빠와 함께 찍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빠와 찍은 것이다.리브카는 정신병이란 현실은 ‘작가’이고, 환자는 그 ‘독자’라고 말한다. 레오가 “그런 미친 생각은 내가 한 게 아니야. 내게 온 거지 나한테서 나온 게 아니란 말이야”(335쪽)라고 대꾸한 장면에서 잘 드러난다.옮긴이의 말을 보면 “모델들에 오류를 도입함으로써 더 신뢰할 만한 예측을 얻어 낼 수 있다.” 리브카는 1903년 독일에서 출간된 다니엘 파울 슈레버 판사의 회고록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에서 이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정신과 전문의이기도 한 작가는 레오가 앓고 있는 정신병의 종류보다는 그의 의식에 떠오른 감각과 감정들에 주목한다. 인간, 더 나아가 삶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그 감정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가령 “왜 나는 현상학적 근거를 무시하고 저 여자가 레마라고 믿어야만 하는가?”(64쪽)라든가, “거짓말은, 작은 심리학적 도플러효과를 만들어 내는 그것은, 그것을 말하는 사람에 대해 왜곡되지 않은 자기 보고보다 더 많은 걸 알려 준다”(85쪽)라는 서술은 리브카가 작품에서 말하고 싶어 하는 것들이다.리브카는 정신병 환자는 독자에 가까우므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자기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착각이나 인식의 오류에 빠져 사는지도 모른다. 이런 착각과 오류는 우리의 삶과 세계를 더욱 실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매개다. 가령 도플러 효과는 우리의 착각과 오류를 측정함으로써 현실을 더욱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한편 화자 레오가 앓는 정신병은 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이다.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나 동물, 물건이 똑같이 생긴 다른 것으로 감쪽같이 바뀌었다는 망상에 빠지는 증상을 말한다. 리브카는 정신병 환자는 독자에 가까우므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어떻게 보면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자기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착각이나 인식의 오류에 빠져 사는지도 모른다. 이런 착각과 오류는 우리의 삶과 세계를 더욱 실제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매개다. 가령 도플러 효과는 우리의 착각과 오류를 측정함으로써 현실을 더욱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게 해준다.이를 위해 리브카가 전하는 일침은 의미심장하다. “진정한 과학자, 자신이 원하는 진실이 아니라 진짜 진실을 탐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면 아무리 달갑지 않고 당혹스러운 사실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심지어 더 깊이 파고들기까지 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에 가장 단단히 뿌리박힌 믿음을 박살 내는 발견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211쪽)리브카가 인용한 구절 중에서 인상적인 것이 몇 군데 있다.“인생은 병원이고 그곳에서는 모든 환자가 침대를 바꾸고 싶다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보들레르 《파리의 우울》 중 ‘이 세상 밖이라면 어느 곳이라도’아도르노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아이들 놀이의 비현실성은 현실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올바른 삶을 연습하는 것이다.”나는 아도르노의 말을 다음과 같이 바꿔 보고 싶다.“아이들의 천진난만함은 현실이 아직 실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삶이 실제가 되는 순간 아이들은 천진난만함을 잃어버린다.”
지금 우리 집에 있는 사람은 내 아내가 아닙니다.
매일 보던 똑같은 얼굴이 지독하게 낯설어지는 순간.
아내가 가짜 로 바뀌었다고 믿는 한 남자의 험난한 여정이 펼쳐진다.

2010년 「뉴요커」 선정 미국 문단을 이끌 40세 이하 대표적 신인 작가 20인 에 이름을 올린 리브카 갈첸은 데뷔작인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 현상들 을 통해 다양한 과학적 요소들을 활용한 실험적 시도를 선보인다. 저자는 진짜 아내를 잃어버린 중년 남자의 불안정한 심리를 정신의학, 정신분석학, 기상학 등과 연관지어 세심하게 묘사해낸다.

주인공 레오는 고도화된 현대인들의 집결지인 뉴욕을 떠나, 정신분석가들이 넘쳐나고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나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거쳐, 무의식 의 땅 파타고니아까지 진짜 아내를 찾아 나선다. 저자는 대륙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긴 여정 속에서 그동안 몰랐던 아내의 과거, 낯선 자신과 조우하는 레오의 모습을 통해 자기 자신조차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의 불안과 고독, 강박의 정서를 그려낸다.

독자들은 아내를 찾아 나선 레오의 길을 따라가며 그가 품고 있는 의문, 그의 옆에 있는 아내가 가짜라는 확고한 믿음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과연 그녀는 가짜일까? 설사 그녀가 진짜 레오의 아내라 해도 그가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면 결국 가짜라고 봐야 하는 것인 아닌가? 이처럼 저자는 옳고 그름에 대해 확실한 선을 긋기보다는 끝없는 질문들을 유도하며 사랑의 불안정성과 마음의 불확실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