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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다닌 지 꽤 오래 되었는데도 로버트 하디 선교사에 관해선 거의 들은 기억이 없다.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에 관해선 수없이 들었으나 하디는 거의 언급되지 않은 선교사로 기억한다. 글이나 책을 통해서도 만난 적이 없다. 아마 내가 섬기던 교회가 감리교단이 아니어서 그랬던 것 같다. 하디에 관해 처음 들은 건 몇 년 전 감리교회로 옮기고 나서였다. 담임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하디에 관해 듣고 그가 몹시 궁금해졌다.‘이런 선교사도 있었구나, 이렇게 훌륭한 분을 여직 왜 몰랐을까’ 그가 누구인지, 어떤 계기로 조선에 오게 되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자세히 싶어졌다.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의 대부흥운동을 촉발한 주체가 하디 선교사라는 점이 내 관심을 자극한 것이다.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이달 초, 담임목사님 서재에서 『로버트 하디 불꽃의 사람』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던지. 반나절 만에 책을 다 읽고 제목을 다시 보니 그의 삶에 잘 어울리는 책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정말이지 한국에서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선교사다. ‘한국교회 부흥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선교사다.그는 평신도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첫발을 내딛고 부산과 원산을 중심으로 의료선교와 복음전도사역을 하며 강원도 여러 곳에 교회를 세웠다. 3년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사역을 하였지만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하여 자괴감과 실망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다 원산에서 여선교사 사경회에서 말씀을 준비하던 중 말씀 앞에 부끄러운 존재임을 깨닫게 되고, 목회와 선교가 영적 사역임에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고 자기 힘으로 해보려고 노력했던 실수와 토착교인들을 무시한 교만함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자신의 실수와 한계, 오류를 동료 선교사는 물론 토착교인들 앞에서 공개 자복한다. 이것이 원산 부흥운동의 시작이며, 평양 대부흥운동의 불씨이다.하디의 눈물은 회개의 마중물이 되어 동료 선교사의 회개를, 토착교인들의 회개를 끌어내게 된다.“ 하디의 회개는 ‘회개의 본’을 보였다. 지금까지 회개에 ‘대해’ 설교한 적은 많았지만 회개를 ‘하는’ 설교는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회개가 어떤 것인지 보여주었다. 그러자 마중물이 바닥물을 끌어올리듯, 눈물이 눈물을, 회개가 회개를, 변화가 변화를 끌어냈다. 토착교인들에게서 회개와 변화된 삶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디의 눈물이 최종손과 지수돌, 진천수의 눈물을 끌어냈고, 진천수의 눈물이 회중의 눈물을 끌어냈다.”(48-49)그들은 회개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회개는 마음과 몸으로 하는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통회 자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용서와 화해, 보상과 배상으로 이어진 회개의 삶을 살았다. 보상과 배상 행위는 가히 충격적이다. 특히 윤성근 전도사의 ‘양심전’은 진한 감동을 준다. 그의 신산한 삶에 가슴이 먹먹해지지만 누구보다 아름답게 살다간 참 그리스도인이다.이렇듯 당시 교인들은 과거에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횡령한 죄를 깨달으면 훔친 물건을 돌려주거나 금전적으로 배상하는 행위를 통해 회개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보상과 배상 행위는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았다. 교회 담장을 넘어 교회 밖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까지 확대된 것은 나를 비롯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해야 할 것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바로 이것이리라.원산 부흥운동 이후 교인들이 회개한 죄목은 사기와 음모, 강도와 절도, 간음과 강간, 교만과 위선, 시기와 질투, 패륜 등 주로 인간관계에서 빚어진 죄들이다. 이러한 교인들의 회개와 변화된 삶은 교회 밖의 불신자와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변화된 기독교인들이 보여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이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시각을 바꾸어 놓은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시 기독교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하니 진정한 ‘회개’는 부흥으로 이어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원산 부흥운동은 그 유명한 평양 장대현교회의 부흥운동을 점화시키고, 조용하던 양반 동네 공주에서는 볼 수 없었던 통회 자복이 터져 나오게 했다. 성령의 강권하시는 능력이 아니고는 밝힐 수 없는 수치스런 죄들을 토해내고 배상한 사례를 읽으며 나의 회개를 돌아보게 되었다. 이들의 회개는 내게 준열한 꾸짖음이었다.“공주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부치려는 교인들로 우체국이 붐볐으며 피해자의 행방을 찾지 못한 경우에는 그 돈을 교회 제단에 바쳤다. 이런 돈에는 ’양심전‘이란 이름이 붙여졌다.”(p81)1903년 8월 하디가 던진 원산 부흥운동의 불길과 열기는 4년 동안 전국에 퍼져 한국 기독교인들의 신앙 체질과 교회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다.(p86)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나라가 어지러운 요즘, 그 어느 때보다 회개가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회개는 입으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라 원산에서 시작된 그 회개여야 할 것이다. 바로 나 자신부터. 1903년에 점화된 회개와 기도의 불꽃이 오늘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피어오르길 소망한다.‘성령의 사람’ 하디는 감리교협성신학교에서 목회자 양성에 힘썼고, 1935년 45년간의 한국 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임할 때까지〈신학세계〉,〈기독신보〉등을 통해 문서사역에 힘쓰다 미국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다가 1949년 별세했다.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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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새시대를 하디와 함께|김영헌 감독?
왜 하디인가? |이 철 감독
천사처럼 찾아온 하디 |안병수 감독
1 첫째 마당
로버트 하디의 선교와 부흥, 그리고 신학
프롤로그 :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아버지
선교 소명과 초기 사역
원산선교, 부흥운동의 모판
하디의 ‘올더스게잇’ 체험
하디의 눈물, 회개의 마중물
지역과 교파의 경계를 넘어
양심전, 회개의 결실
평양으로 옮겨 붙은 부흥의 불길
부흥운동과 민족운동
신학교 사역
배우면서 가르치는 교수
감리교회 신학 전통
문서 사역과 은퇴
에필로그 : 부흥이 다시 오려면
2 둘째 마당
로버트 하디의 설교와 에세이 모음
조선의 처음 남감리교인 중 1인이 되는 윤성근
기도를 힘써 열심으로 함
신자의 의?(마 6:33)
낙심자를 동정하라
교역자 제씨에게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개혁자 예수
기독교? 교파주의?
성경의 영감
기독교 사상의 기조
하나님의 동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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